사형을 앞 둔 사람의 마지막 하루를 실감나게 그린 소설.
샤르트르의 ' 벽 ' 입니다.
스페인 내란의 주도자인 라몽그리를 며칠간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잡혀간 ' 이비에타 ' 는 다음날 사형이 집행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 순간 그는 바로 며칠 전 대주교 골방에서 보았던 큼지막한 한조각의 하늘과 그 하늘위로 떠올렸던 추억들을 회상했죠.
아침나절 하늘이 짙푸를때는 대서양의 모래사장이 생각났고
대낮이 되 해가 보이면 배와 올리브를 먹으며 망살렐라를 마시던 세빌리아의 바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서 그늘이 지면 투기장의 한쪽 귀가 햇빛에 반짝이고 다른 쪽은 깊은 그늘이 번져가는 풍경들을 추억합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만큼 하늘을 실컷 올려다 볼 수 있는 그날 밤에는
그 넓은 하늘도 아무런 회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죠.
무슨 생각을 하려고 해도 그 생각이 잡힐듯 하면서 잡히지 않고 탄환과 총성이 떠오르면서 멀지 않은 곳에 널부러져 있는 자신의 시체만이 눈 앞에 보이는듯 했습니다.
그가 죽어 없어져도 세상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계속 되리라는 생각이 이르자 아름다웠던 지난날의 추억이나 목숨보다 소중했던 동지와의 신뢰, 조국의 미래까지도 더 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 라몽그리 ' 의 은신처만 알려주면 그는 사형에서도 면하고 감옥에서도 풀려날 수 있었는데요. 사촌형네 집에 숨어있다고 말해버릴수도 있었지만 ' 이비에타는 '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마지막 협상에서는 그들에게 전혀 엉뚱한 장소를 일러 줍니다.
그것은 동지를 위해서도 조직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다만 세상을 조롱하는 것에서 야릇한 쾌감을 느낄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동료의 은신처를 대고 거짓을 대었음에도 그는 이상하게도 사형대에 오르지 않고 다른 포로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가 거짓으로 고한 은신처에서 우연히 ' 라몽그리 ' 가 발각되는 바람에 약속대로 사형을 면하게 됐습니다. 하얀 페인트칠이 된 감방에서 다가올 죽음만을 생각하던 ' 이비에타 '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진 마지막 조롱에 목숨을 구한거였죠. 이 어처구니 없는 우연과 반전 앞에서 ' 이비에타 ' 는 기쁨이 아니라 기막힌 슬픔으로 미친듯이 웃었다. 울었다 합니다. 하얀 페인트칠이 된 감옥의 벽. 동지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라고 유혹하는 세상을 향한 벽
그가 지나온 시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죽음의 벽 앞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시 열리는 삶이 어째서 기쁨이 아니고 슬픔일까요?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미 삶에 의미를 던저버린 그에게는 다시 주어진 삶이야 말로 가장 큰 형벌이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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